생활이 어려워 절에 의지하게 되었고, 절에 들어간 비용때문에 너무 큰 짐으로 돌아와...

성공사례

생활이 어려워 절에 의지하게 되었고, 절에 들어간 비용때문에 너무 큰 짐으로 돌아와...

이장헌법무사 0 620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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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872,770

 

3.총 채무액 : 196,790,128

 

4.월 변제금 : 787,770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28%

 


신청인은 경북 청도군 **에서 태어난 최**입니다. 저는 5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고 옛날부터 맏이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경찰관으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적은 월급과 많은 식구들 때문에 항상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첫째 딸인 저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하고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경북 경산군에 있는 **모직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몇 년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부모님 옆에서 살림과 집안일을 배우고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남편이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우리 3식구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두 아들들을 불쌍하게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수산시장에 큰 아들이 취직하게 되었고, 막내는 울산 중공업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혼자 살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였으나 여자가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음을 안주할 곳이 필요해 절에 다니게 되었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자꾸 집안이 어려워졌습니다. 보살들이 부처님께 제를 올리면 집안이 잘 풀린다고 하니 저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돈이 자꾸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생활비에 절에 나가는 비용이 너무 짐이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신용카드와 대출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대출을 계속하다보니 이자와 원금이 더 불어났습니다. 차마 아들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돈을 벌기 위해 파출부 일도 나갔지만 나이가 많아 일자리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금에 이자가 더 불어났습니다. 죽으려고 생각도 하였으나 죽지는 못하였고, 먹지도 못하고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몸은 몸대로 힘들고 머리는 머리대로 아프고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런 상태까지 왔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동생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시 대출에 또 다시 대출을 받고 했습니다. 죽을 생각을 여러 번 하였고 병도 얻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자식도 죽고 나도 죽을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말하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자식을 쳐다보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내 자신보다 아들 얼굴을 못 쳐다 보겠고 내 아들만큼은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능력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큰 고통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후회 많이 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엄마로서 다시 한 번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