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일을 하다가 모르던 네트워크 사업을 차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성공사례

보험일을 하다가 모르던 네트워크 사업을 차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이장헌법무사 0 734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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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800,000

 

3.총 채무액 : 114,569,234

 

4.월 변제금 : 200,000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10%



 

저는 1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여동생이었고 중간인 저는 자라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차별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19982월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그 당시 IMF라 취직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어쩌다 옷가게 정직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1년 후 회사가 퇴출 기업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게 되었고 퇴직금으로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2년 정도 타지에 있다 보니 향수병에 걸려 입국을 결정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한 가족이 아닌 왠지 손님이 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느꼈던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뭔지 모르는 차별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새어머니라는 사실을....

 

10년 정도 사귄 아이 아빠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이가 생기자 전 남편은 부담스러워 하고, 가사 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부부간에 점점 불화가 쌓여가던 중 아이가 생후 7개월 쯤 되었을 때 집안일로 우리 부부는 싸웠고 결국엔 이혼을 하였습니다. 아이 아빠는 친권을 포기하는 대신 양육비도 주지 않겠다고 하였고 저는 아이랑 둘이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좋았기에 그렇게 합의하고 이혼하였습니다. 이혼 후 친정 집으로 들어갔으나 눈치가 보이고 편히 있을 수가 없었고, 방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였습니다. 돌도 되지 않은 너무 어린 아이라 어디 가서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정말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 한명이 보험 일을 해 보자고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였으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보험은 저도 누군가 권하면 부담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겨우 3~4년 정도는 견뎠으나 일에 대한 회의가 들어 다른 일을 알아보던 중 아가씨 때 일본어 학원에 같이 일하던 선생님이 일을 같이 해 보자면서 찾아 왔습니다. 네트워크사업이었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괜찮은 일인 것 같아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네트워크 일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왠지 모를 기대감에 빚을 지고 있음에도 포기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까지 와 있었습니다. 저의 한 순간의 판단으로 빚을 진 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잘 살아보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 몸이 아파오니 아이가 커 갈수록 걱정이 되며, 저의 노후도 걱정이 됩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