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에....

성공사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에....

이장헌법무사 0 739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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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400,000

 

3.총 채무액 : 128,196,369

 

4.월 변제금 : 427,593

 

5.변제횟수 : 60

 

6.변제율 원금의 29%



 

신청인은 경남 김해에서 2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농사를 지으시고, 어머니께서는 낙동강 인근에서 잡은 가물치, 장어 등을 판매하는 일을 하여 부유하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막냇동생이 아직 젖도 떼지 않았던 때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농사일을 하셔야했기 때문에 막내는 항상 제가 돌봐야 해서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께서는 세월을 술로 보내셨고 저희 형제들은 아버지까지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8년 뒤에 위암, 간암으로 투병을 하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언니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다녀 기숙사생활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제가 동생들을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0살 어린마음에 상처가 컸기에 결혼하지 않고 엄마노릇 하며 가족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31살에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한 달 반 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두 딸의 엄마가 되면서 우리 딸들은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부모 복 없는 사람은 남편 복도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게 다 가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와 결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었으며 댄스 스포츠에 미쳐 가정은 나 몰라라 하고 외박을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만나는 여자도 한두 명이 아니었고 심지어 그 여자의 남편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지만 부모 없이 자란 탓에 내 딸들만은 그렇게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참고 살아왔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본인 관리와 춤에만 몰두해 귀가시간은 항상 새벽 2-3시가 넘었습니다. 미행을 해보았더니 방을 얻어 다른 여지와 있는 걸 보게 되었고 그렇게 별거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결혼 생활 당시에도 남편의 급여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고 생활비와 학원비가 부족하다고 하면 고아원에 보내라는 말까지 하여 결혼 초부터 빚을 떠안고 생활하였습니다. 차라리 혼자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애들 밑으로 들어가는 돈은 점점 많아졌고 영업을 하던 저의 수입도 일정하지 않았기에 빚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항공학과 졸업 후 승무원 준비를 하던 작은 딸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채가 안 나오다보니 작은 딸의 생활도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저의 수입마저 1/3으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빚은 계속 들어났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에 보험도 무리하게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여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3개월 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현금서비스, 보험약관 대출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믿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사용한 것이기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겁습니다.

 

결혼 전에는 소녀가장으로, 결혼 후에는 가장 아닌 가장으로 잠 못 이루고 눈물로 지새는 날이 많았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폭력, 폭언, 경제적 어려움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온 저에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남은 세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