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결혼하였고 이혼하면서 오직 아이에게만은 부족함없이 키우고 싶었는데....

성공사례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고 이혼하면서 오직 아이에게만은 부족함없이 키우고 싶었는데....

이장헌법무사 0 828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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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930,906

 

3.총 채무액 : 56,054,677

 

4.월 변제금 : 465,906

 

5.변제횟수 : 60

 

6.변제율 원금의 51%



신청인은 부산 사하구에 사시는 부모님의 딸 김**입니다. 부모님과 오빠, 저 이렇게 4인 가족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조금 엄하셨지만 굉장히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IMF로 인해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 두분 다 바쁘게 일하러 다니셨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오빠랑 저 둘 뿐이였고 어머니의 품이 늘 그리웠지만 부모님이 힘들게 바쁘게 일하셔서 저는 중학교를 무난하게 잘 보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미용에 관심이 많아서 미용과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열심히 자격증도 따고 졸업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을 가라고 하셨지만 부모님께서 오빠 대학 등록금으로 힘들어 하시는 얘기를 몰래 듣게 된 뒤로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하고 바로 취업을 하였습니다.

 

첫 직장으로 번화가에 있는 미용실에 취직을 하였지만 직원들의 텃세와 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태도에 힘들어서 퇴직을 하고 저는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서울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이것저것 알바하면서 생활하다 돈을 조금씩 모아서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 무렵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남편을 만났고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임신을 하였습니다. 배가 한참 불러오는 중 부산에 계시는 아버지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으셨고 저는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혼자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이 일은 했지만 수입은 반 이상은 시댁으로 들어갔고 저는 겨우 휴대폰비, 아이 보험비만 내며 버텼습니다.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고 저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지키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공부하여 자격증 취득 후 에스테틱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바람에 오직 일만 하면서 아이를 키웠고 제 의지로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든 죄책감에 부족한 것 없이 키우고 싶어 돈을 많이 벌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삶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친구의 얘기에 남자친구를 소개 받게 되었고 재혼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만났습니다. 모아놓은 돈으로 월세방을 얻어 같이 살게 되었고 그 뒤로 남자친구는 직장을 수시로 그만두면서 제 카드를 쓰고 다녔고 제 월급으로 생활비가 부족하였습니다. 남자친구가 대출을 받자 제안을 했고 저는 거부했지만 생활이 힘들어 결국엔 카드론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대출금을 먼저 상환하면서 연체 한번 하지 않았으나 남자친구가 또 직장을 쉬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이자 싼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대환대출을 하면서 추가대출을 받았고 연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또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20191월 달에 집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손이 부러져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게 되었고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받은 보험금으로 지내다 재활기간이 길어지게 되었고 또 이렇게 악순환이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돌려막기를 하다가 총 5군데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순 없기에 재활이 끝나지 않은 채 바디관리사가 아닌 야간카운터를 보면서 월급을 받아 대출금을 열심히 갚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월세집 계약이 끝나 이사를 하게 되었으나 턱없이 모자란 보증금으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나중에 보증금 빠질 때 돌려 달라하시며 전세금을 조달해 주셨습니다. 그 사이 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면서 혼자 대출금을 감당해 오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가게가 휴업을 하게 되고 월급은 줄어들고 상황이 되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밥조차 챙겨주기 어려웠고 너무 미안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한 번의 이혼으로 정신차리지 못하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보려 했던 제가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으로 인하여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사주지 못하게 되었고 일만 하고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한 못난 엄마여서 미안하다며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애정이 그리웠고 그런 마음으로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였고 아이에게 부족한 것 없이 키우고 싶은 마음에 섣부른 제 판단으로 또 실수를 하게 되면서 제 능력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아이에게 이런 고통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아이의 엄마로써 가장으로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나의 가족과 또 나 자신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제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의 가정을 지켜주시고 살려 주세요. 다시 한번 눈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