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사람에게서 사기를 당해 힘들 때 오빠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코로나로 또다시 위기에 몰려....

성공사례

믿었던 사람에게서 사기를 당해 힘들 때 오빠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코로나로 또다시 위기에 몰려....

이장헌법무사 0 897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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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490,000

 

3.총 채무액 : 56,647,332

 

4.월 변제금 : 393,301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31%



신청인은 경주 산내 작은 시골에서 농사꾼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위로 연년생 오빠를 둔 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잦은 사고와 주폭이 심했고 어머니는 집을 떠나 따로 살았습니다. 술에만 의존해 사시는 아버지 밑에서 중학생 때부터 집안 살림과 오빠의 등하교 준비를 책임지면서 제 학교생활을 병행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시골에 홀로 계신 할머니와 따로 살았지만 작은 장사를 하며 간간히 용돈을 주시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중, 고등학교를 마쳤고 공부를 잘하는 오빠의 대학 학비로 인해 연년생인 저는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전문대학의 과수석으로 장학금을 받고 여자로서 바로 취업이 용이한 피부미용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부산으로 오게 된 저는 학비 외에도 미용과 특성상 많은 재료비, 생활비 등으로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행히 2005년 졸업하자마자 병원 피부과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후 대학생활 중 실습으로 다녔던 피부관리실 실장님의 권유로 **코스메틱이라는 피부관리실로 옮겨 관리자로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용이라는 분야의 적은 임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야간타임에 옷가게와 주말에는 호프집 서빙, BAR 서빙 등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였습니다. 아끼면서 조금씩 저축도 했지만 피부관련 업종은 차리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적은 비용과 작은 공간에서 시작할 수 있는 네일을 선택하였습니다. 27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네일2, 1급 기술 강사자격증을 취득하여 그 당시 다녔던 학원부원장님의 제의로 SBS뷰티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일을 하며 틈틈이 학교로 실습교육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3년간 중학교, 고등학교를 시간별로 수업을 맡아 네일을 가르치면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아버지 대신이었던 할머니까지 돌아가셨습니다. 2017년 평생을 힘들게 모은 돈으로 33살의 나이에 낡고 허름하지만 꿈에 그리던 저의 첫 가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골목 외진 곳이다 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장사는 잘되지 않았고 직원의 임금과 생활비로 또 다시 저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1년도 되지 않아 소상공인 대출로 받은 여유자금도 다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을 내보내고 가게를 정리하려 했지만 자리가 좋지 않은 탓에 가게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영업을 했고 다행히도 조금씩 찾아주시는 단골이 생기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매출이 적어도 점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꾸준히 장사를 해왔습니다.


2018년 여름 평생을 일만 하느라 해외여행 한번, 휴가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해 처음으로 휴가를 계획하던 중 인터넷으로 알고 지내던 동생이 본인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여행사를 하신다며 티켓이 있으니 보내주겠다는 말에 예약금으로 처음 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일본으로 변경해 주겠다, 여행사 계좌로 보내야 되는데 실수로 아버지 계좌로 보냈다는 등 몇 차례 입금을 하였고 나머지는 아버지께서 처리해 여행 전에 환불처리 된다고 하여 여행갈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 동생은 그 사이 직원월급을 보내야 되는데 보안카드를 잃어버려서 저녁에 보내줄테니 대신 보내달라고 부탁하였고 여행가게 해준 고마운 마음에 거절할 수 없어 또 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버지와 틀어져 본인 사업에도 문제가 생겼다며 이것부터 해결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희망고문만 여러번, 8년 납입한 청약에 저축, 여러개의 보험까지 해지하면서 여러번 입금하고 버텼지만 더 이상 융통할 돈이 없어지면서 가게 임대료와 집세가 4-5개월씩 밀리게 되고 제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받으려면 해결해야 된다고 게속 돈을 요구했고 돈을 돌려받지 못해 결국 카드 값과 대출이 터지면서 추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추심으로 인해 가게 영업은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너무 커져버린 빚과 다른 사건으로 체포된 동생의 담당형사 연락으로 사기란 걸 확인하게 된 저는 모든 희망이 무너져 버렸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1년간 사기피해로 끌려다니느라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버렸고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순간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친오빠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오빠가 최소한의 생활은 해야 되니 밀린 가게와 집 임대료를 빌려주었고 오빠의 우는 모습에 차마 포기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1년 이란 시간동안 터지는 빚을 막고 매일 매시간 사기로 돈을 보내느라 한푼도 없었던 저는 회생 대신 신용회복위원회를 찾게 되었고 8년이란 긴 시간이지만 조금씩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힘들지만 3년 만에 가게도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회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이나마 일상을 찾아가던 중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저는 다시 한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일상의 여유도 없이 죽도록 발버둥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힘으로 가난과 외로움에 지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쉽게 믿었고 어리석었으며 사기에 무지했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열심히 일만하고 살아온 제 스스로가 안타까워 여행 한번의 욕심으로 이런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최소한의 삶이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남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평범함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나의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더욱 열심히 살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게 한번만 더 살아갈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