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남편에 보증으로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지내다 만났으나 또다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

성공사례

노름꾼 남편에 보증으로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지내다 만났으나 또다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

이장헌법무사 0 1,076
관할법원 : 서울회생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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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203,800

 

3.총 채무액 : 54,899,847

 

4.월 변제금 : 149,484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10%



신청인은 경남 거제라는 시골에서 농사꾼 부부 사이에서 35녀 중에 둘째딸로 태어난 정**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가족이 워낙 많았던 터라 제대로 된 공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20대 시절에 자식 없이 부산에서 살고 있던 이모 댁에서 딸처럼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모부 소개로 거제도 사람인 남편을 만나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댁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남편은 아버지 뒤를 이어 배를 타는 사람이었고 부두가 가까운 부산 남부민동이라는 곳에서 신혼집을 얻고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원래 배에서 근무하는 선원이라 원래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저는 외동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혼자서 키웠습니다. 남편은 노름까지 하면서 항상 집에 와서 돈을 가져갔고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집에 오기는커녕 아들 한번 데리고 목욕 한번 가지 않는 그냥 노름꾼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어떻게든 아들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는 우유배달, 낮에는 남포동 가판(노점장사)에서 커피를 팔면서 겨우 귀한 아들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중학생 무렵에는 정식으로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 후에도 아들은 챙기겠다는 전남편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한번도 아들을 찾아오지도 않고 경제적인 지원도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남들이 부탁을 하면 거절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며 없지만 남들을 도와주거나 챙겨주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몇 해를 도와줬던 지인 동생이 저에게 이천만원이라는 돈과 다른 사람에게 빌렸던 돈에 저를 보증인처럼 만들어 버리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날부터 매일 힘든 시간과 빚쟁이들 독촉에 시달렸지만 제가 책임여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변제를 하였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멀리 외국에 있는 사촌동생에게로 떠나게 되면서 아들하고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몇 해 뒤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저를 키워주신 이모님께서 많이 아프셔서 서울에서 생활하며 이모님 병간호와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제가 없자 아들은 이일 저일을 전전하며 엄청나게 고생한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기도 울었습니다. 그래도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아들이 이제 꽤 자리도 잡고 오래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고 하여 너무 행복했습니다. 며느리랑 친구처럼 잘 지냈고 저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대해 주어서 저 또한 딸처럼 챙겼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너무 행복했고 무엇보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아들은 몇 해 동안 하고 있던 휴대폰 온라인 쇼핑몰을 잘 해오다가 갑자기 카페도 병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잘 했으면 좋겠다고 힘내라는 얘기 말고는 제가 해줄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힘들어지고 동업자 친구와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며느리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주지 못한 제 신세만 한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내외가 장사가 점점 힘들어져 빚만 계속 늘어나니 가게를 팔아야겠다고 하였고 금방 해결될 줄 알았던 가게는 팔리지 않아 빚이 늘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었지만 제가 매일 식당에 나가서 버는 돈은 하루 4만원 남짓으로 모아 놓은 돈이 없는지라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들 내외가 너무 급한지 도움을 요청하길래 제가 카드로 빚을 내어서 아들 내외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가게는 팔리지 않고 빚은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카드사 몇 군데 카드를 돌려막기 시작했고 결국 아들 가게는 팔리지 않아 아들은 본인 카드값, 며느리 카드값 그리고 처가에서 빌린 돈 등등 가게에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돈은 사라졌습니다. 결국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 해결이 되지 않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아직도 하루에 14시간을 가게에서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걸 알기에 염치 불구하고 판사님께 이렇게 선처를 구합니다. 저희 아들내외 그리고 저까지 모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요행 한번 바라지 않고 살았지만 결과는 제가 생각한 거랑은 너무 다른 현실입니다. 거기에 코로나라는 무서운 병까지 돌아서 저는 지금 그 식당일조차도 매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저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이 모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선처 부탁드립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누구보다 더 행복한 가족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