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조선업의 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장사마저 안돼 대출로 생활하는 처지가 되어....

성공사례

거제 조선업의 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장사마저 안돼 대출로 생활하는 처지가 되어....

이장헌법무사 0 1,154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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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3,371,247

 

3.총 채무액 : 370,808,465

 

4.월 변제금 : 1,421,247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23%



신청인은 경남 통영시 **면 **리의 작은 섬에서 어부이셨던 아버지와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째이자 5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입니다. 저에게는 부모님, 그리고 4명의 형과 2명의 누나가 있었고 우리 집은 대가족으로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어머님마저 뇌출혈로 쓰러지시면서 장애 3급 판정을 받게 되면서 우리집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형과 누나들이 성장을 하셨기에 어머님을 보살펴 주셨고, 저는 어린 나이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대학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저는 전문대이지만 대학진학의 꿈을 이룰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형, 누나들도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고 저는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학 2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나 방학, 학기 중에도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학교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업 중에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원입대하여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또 제대 후에는 복학하여 다시 열심히 공부하였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 할 수 있었습니다.

 

첫 직장은 이마트 **점에서 검품파트 직원으로 입사하였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근무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최우수 친절 사원이라는 상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며 열심히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많이 생겼습니다. 비록 가정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저의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맺은 것에 형제들은 뿌듯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마트 근무 중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픈 어머님을 제가 모시고 살게 되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겨서인지 더욱더 제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8년 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영업을 시작하였고 서비스 업종에서 8년 동안 일했던 마음가짐으로 거제시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는 제가 생각했던만큼 잘 되었고 거제시로 이사를 하면서 아파트 융자를 받아 구매도 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다보니 잘 살아보려는 욕구는 더욱더 강했고 지금까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다 보니 그 욕심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거제시에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고, 나중에 입주하게 되면 지금 살던 집을 정리하여 이사하면 무리가 없을 줄 알고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제시의 조선업 경기가 하락하게 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게 되어 중도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매출까지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장사가 끝나면 집사람과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는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고 낮에는 홍보와 배달을 하면서 노력해 보았지만 경기가 너무 안 좋은 탓인지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월세도 밀리고 직원 인건비도 계속 밀리고 거래처에 결제 대금도 밀리기 시작하면서 장사 유지가 너무 어려워 살던 아파트도 시세보다 싼 금액으로 손해를 보며 매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양 받았던 아파트도 분양가보다 하락하여 큰 손실을 보고 정리하면서 월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 지인들과 금융권을 통하여 대출을 받아 생활을 했습니다.


조선 경기는 더 이상 회복이 힘들 것 같아서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장사를 하기 전 저에게 남은 것은 대출금과 지인에게 빌렸던 빚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살기 위해 또 다시 은행권 대출을 받아 보았지만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또 다시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보니 더욱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자를 줄여보기 위해 장사 홍보를 직접하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매출로 감당되지 않고 독촉에 의해 또 다시 고금리 대출을 받다보니 집사람까지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금리 이자와 수수료를 충당하기에는 가게 매출로 부족하여 생활비, 임대료, 고금리이자, 지인에게 빌린 이자 등(5백 만원)을 충당하기 위해 또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인에게 빌린 돈도 일부라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아 제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가 어둡게만 보였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안쓰러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과 마음 편히 살게 해주지 못하고 채권자들의 독촉전화에 시달리게 한 것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으로 인하여 생활조차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집사람과 서로 밤새 부등켜 안고 울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과 어려움에 지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고 제 아이들에게는 결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능력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게 되어 이런 결과를 나온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의 아빠로서 또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