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려했으나 부모님의 병원비에 부동산 경기침체로 수입도 줄어....

성공사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려했으나 부모님의 병원비에 부동산 경기침체로 수입도 줄어....

이장헌법무사 0 1,193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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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600,000

 

3.총 채무액 : 113,310,192

 

4.월 변제금 : 763,576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24%




신청인은 경남 통영이라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초, ,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빚보증과 사업실패로 인하여 가정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졌고 그로 인한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사춘기를 지냈습니다. 친구들의 용돈 받는 모습과 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며 늘 부러워했고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내 자식들은 공부도 많이 시키고 필요한 것들은 부족함 없이 사주며 키우리라는 다짐을 수없이 많이 하곤 했습니다.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혼자되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시며 동생들과 저를 키우셨고 집안의 맏딸인 저는 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살에 남편을 만났고 23살의 어린나이에 결혼해서 슬하에 11녀를 두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자녀는 모두 착하게 학교생활도 잘해주고 친구 관계도 좋았습니다. 애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건설 인테리어 일이랑 식당에서 일당제로 일하였고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인중개사 공부도 하고 편의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아이들 학원비와 생활비를 보태며 풍족하진 않지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매달 두 아이 학원비에 고등학교 등록금에 생활비에 애들 용돈에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으며 남편의 일정치 못한 소득과 잦은 휴직 및 이직으로 인해 생활비가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공인중개사시험에 합격했고 생계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6평짜리 건물에 사무실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냉정했습니다. 부동산 사무실을 오픈하였지만 수입이 거의 없어 힘들었습니다. 큰 아이가 4년제 대학에 합격하고 일부는 장학금을 받아서 조금이나마 학비마련에 보탬이 되었지만 생활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고등학교 럭비 운동선수라 식비에 운동복에 축구화에 학부모회비, 전지훈련비 등으로 지출되었고 우리 부부의 돈벌이로는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혔고 경희대에 입학하게 되어 희망이 생겼고 어떻게든 밀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형편에는 운동선수를 키워낼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았지만 부모인 저희는 고졸이나 자식들은 대학졸업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장기카드 대출을 받게 되었고 그 돈으로 비싼 등록금과 학부모 회비, 해외전지 훈련비, 아들 생활비 등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은 해외전지 훈련 중에 어깨회전근개파열이라는 부상으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고 수술비와 재활비 등 병원비로 카드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운동선수 생활도 포기해만 했습니다. 아들의 병원비와 재활운동 치료 비용으로 힘들어 할 무렵 시어머니의 심근경색과 심장비대, 당뇨병 악화로 장기 입원과 통원치료를 하였고 자식 된 도리로 병원비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든 남편의 소득과 저의 소득으로 카드 값과 대출들을 갚아보려 했지만 항상 적자에 허덕였습니다. 작년부터는 건설 인테리어 운송쪽의 실물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일용직 근로자인 남편은 벌이가 많이 감소하였고 그나마 일용직으로 몇 년간 일한 회사에서 올해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해준다는 말에 기뻤습니다. 그것도 잠시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침체되어 저의 부동산 중개일도 많이 줄고 남편이 다니는 회사도 인원을 감원한다, 월급을 감액한다 등 너무 두려운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남편이 감원 대상이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살길이 막막하고 자포자기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카드 값에 카드론 대출에 한꺼번에 밀려드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고. 또 다시 고금리의 자동차 담보대출을 하여 카드 값이며 대출을 막아보고자 하였으나 그 일은 한심한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도저히 이 빚에서 헤어 나올 수도 갚을 길도 보이지 않았고 앞날이 캄캄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채권자분들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으로 인하여 나날이 힘들어졌고 높은 금리의 대출과 카드론, 카드사용이 누적되어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심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고 두 자녀에게 우리집 상황을 알리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저의 불우했던 어린시절로 인해서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 길을 내 자식만큼은 걷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자녀만큼은 대학졸업 학력에 남들이 누리는 것을 해주고 싶었던 어미의 잘못된 생각이 이렇게 쓴잔이 되어 올 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 능력 아닌 것에 욕심을 너무 부렸던 것 같습니다. 자녀에게는 가난으로 인한 비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저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편과 두 자녀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되어 저도 맘이 많이 아픕니다.


부디 무거운 경제적인 짐을 덜어주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앞으로 형편에 맞는 소비생활로 우리가정과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제발 한번만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가정을 살려주시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