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아내의 비자문제로 소송까지 해서 같이 살게되었으나 조선업의 불황으로 임금체불로 생활이 어려워져...

성공사례

중국인 아내의 비자문제로 소송까지 해서 같이 살게되었으나 조선업의 불황으로 임금체불로 생활이 어려워져...

이장헌법무사 0 1,216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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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3,333,407

 

3.총 채무액 : 236,348,519

 

4.월 변제금 : 1,004,116

 

5.변제횟수 : 60

 

6.변제율 원금의 57%



신청인은 197810월 부산에서 태어나 1997년 부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졸업하는 해에 부산 **동의공업 전문대학 **과에 입학하였습니다. 199712월에 군 입대 하기 전까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습니다. 군 입대 직전에 IMF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부도와 연대 빚 보증으로 저희 가정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마저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사업체 부도로 인한 빚과 연대 보증빚은 고스란히 저희 세 식구에게 돌아왔습니다. 저와 동생이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어머니께서 조금씩이나마 채무를 변제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20002월 군 제대 후, 집에 도움이 되고자 학교를 1년 더 휴학하고, 택배기사, 주유소, 호프집 등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힘겹게 2003년도에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집에 남아 있는 빚과 학자금 대출(500만원)을 제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소개시켜 준 원단 공장에 취직하였으나 월급 120만원으로 대출금 상환과 생활비를 제하고 나니 저에게 남은 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마이너스가 되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조선소가 월급을 많이 준다 하여 2004년부터 조선소 일에 뛰어 들어 현재까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입사를 하고 보니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체불로 인해 저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연체를 시키지 않기 위해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을 받아 빚을 갚고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월급을 타면 카드대금을 내고, 모자라면 또 현금서비스 받고 그렇게 계속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빚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조금이나마 월 납입금을 줄이고자 은행과 캐피탈에 대환 대출을 문의 하였으나, 신용등급과 과도한 대출로 인해 거절당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업체의 비싼 이자로 인해 빚이 줄어들기는 커녕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그로 인해 저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2008년에 친구의 소개로 중국인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아내가 중국으로 돌아가서 서류 준비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결혼 비자 발급 문제로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저의 큰 딸을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외교부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소송 준비 과정에서 드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말 밤낮 없이 일을 했습니다. 부족한 금액은 지인에게 빌리거나 또 다른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하여 비용을 지불하였고, 그렇게 계속 대출금은 줄지는 않고 늘어만 가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비자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어 제 아이와 아내는 무사히 한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너무 어리고, 아내가 외국인이어서 아내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 혼자 외벌이로 주간, 야간을 일하면서 대출금 상환, 보험료, 통신비, 관리비 등등 일이 많이 없어 월급이 적은 달에는 추가대출, 현금서비스를 받아 갚고 이자 내고 이런 생활이 계속 되었습니다그러던 중 조선업의 장기 불황이 찾아와 회사가 문을 닫고 밀린 임금은 한두달 뒤에 받고 하다 보니 대출금 갚을 길이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내어 빚을 갚고 생활비로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부산과 울산을 오가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보니, 예전에 타고 다니던 차가 오래되고 운행 거리도 상당하다 보니 한번 씩 수리할 때 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40~50만원씩 정도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후된 차는 팔고 지금의 차로 바꾸게 되었습니다계속되는 조선경기의 불황으로 일거리는 계속 줄어만 가고 한달에 20일 정도 밖에 일을 못한 달도 생기자 저의 수입을 계속 줄어만 갔습니다. 어떻게든 연체를 하지 않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서 막고 우리 가족에게 피해를 안 가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카드론을 받아 놓고 월급에서 모자란 대출금, 카드대금, 이자를 내고 하였으나 이제는 매월 납입금조차 못 갚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너무 힘들고 괴로운 나날의 연속입니다. 돌파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 아이와 아내,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금까지 같이 해준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과 마음 편히 살게 해주지 못하고 채권자들의 독촉전화에 시달리게 한 것이 미안하여 마음이 너무나도 서글픕니다. 꼭 저의 가족을 지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