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갔지만 생활이 되지않아 다시 국내에 들어왔지만....

성공사례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갔지만 생활이 되지않아 다시 국내에 들어왔지만....

이장헌법무사 0 1,194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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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2,250,093

 

3.총 채무액 : 35,366,299

 

4.월 변제금 : 538,680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79%



신청인은 부산에서 2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친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고 친할아버지의 반대로 어머니는 일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일을 하러 다니셨고 할아버지는 우리 3남매를 돌보셨습니다. 권위적인 할아버지의 생활방식과 교육 때문에 우리는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그늘에서 독립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오빠를 미국으로 보냈고 저와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엄마는 일을 다니면서 조금씩 집안형편이 나아질 무렵 IMF로 인해 모두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나마 언니가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입으로 우리 3명은 겨우 밥만 먹고 살았습니다. 저는 19962월 동래**전문대 **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5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고 언니는 중간에 시집을 가는 바람에 우리 집에 보탬이 되지 않았고 제가 집안의 생활비를 다 내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중매로 2006년도에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할 당시 시아버님이 인도네시아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고 직업이 없던 신랑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인도네시아에 들어가니 시아버님은 작은 철공소를 하고 계셨고 신랑은 특별한 직장도 없이 아버님 일을 도와드리며 5년 동안 인도네시아에 머물다 도저히 생활이 힘들어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막상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일자리가 없던 신랑은 친정 오빠 밑에 고철관련 일을 하다 그만두고, 인력 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울산 중공업에서 일하다 그만두었고 무슨 일이 하던지 1년을 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매달 생활비는 들어가는데 일하다 그만두고 급여가 고정적으로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저 또한 정해진 일자리가 아닌 아르바이트만 하다 보니 채무만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1년 반 전에는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비도 보태야하는 상황이라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신랑도 일자리가 없어지고 2-3달 일하고 쉬고, 2-3달 일하고 쉬고 이렇게 반복되다보니 늘어나는 건 채무 밖에 없고, 주말 부부이다 보니 이중생활비에 더 힘들어졌습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처음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하였으나 정직원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채무로 인해 안정을 취하려고 해도 도저히 채무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술서를 쓰면서 지난날을 생각하니 후회만 눈물만 남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제 가정은 지키고 싶기에 이렇게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신랑이 언제 직장을 그만둘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직장이 안정되었기에 그나마 살아갈 희망이 보입니다. 채권자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열심히 일해 갚겠습니다. 개인회생이 허가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