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혼자 두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의 삶

성공사례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혼자 두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의 삶

이장헌법무사 0 1,193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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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

 

2.월 평균수입 : 2,569,441

 

3.총 채무액 : 155,201,965

 

4.월 변제금 : 1,472,742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41%



신청인은 부모님 슬하에 3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점* 입니다. 부모님과 오빠들의 귀여움을 받고 어려움 없이 유년생활과 청소년 시기를 보냈습니다. 대학은 미술을 전공하여 부산*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초등학생 위주로 조그만 미술학원도 결혼 전까지 운영을 하였습니다. 애들 아빠와 대학생 시절에 만나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였고 1년 뒤 첫째 아이와 남편의 직장 따라 인도네시아에 따라가 둘째도 그곳에서 출산하고 6년을 생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국내로 돌아온 뒤 2달 후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편의 우울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끼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 당시 저는 32, 첫째가 6, 둘째가 2살이었고 남편은 외동아들이며 시어머니 혼자 계시고 아무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곳이 없이 막막했습니다


그나마 친정에서 어린 아이들을 어머니께서 키워주시면서 그때부터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보험 보상금 받은 것을 이자라도 조금 더 받고자 빌려주고는 그 돈마저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설상가상 누구와도 의논을 할 수가 없어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백화점 일부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영업 세일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저의 적성에 맞아서 팀장부터 지금의 지사장까지 진급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큰애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여자 혼자서 뒷바라지 하기가 너무 버거웠습니다. 매달 하숙비를 보내고 아이는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 하고 용돈을 벌어 쓰고 했습니다. 둘째는 고등학생이었고 금전적으로 많이 부족하여 금융권, 2금융권 등에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한 돈은 좀 플라스를 돌리려하면 또 큰일이 일어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너무 힘든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인회생을 시작해서 1년간 힘겹게 매달 변제금을 지불하고 있던 중 큰 아이의 결혼이 20217월에 잡히는 바람에 몇 달 연체가 지속되어 중간에 끝나버렸습니다다시 한번 더 새로 일어날 수 있게 판사님께서 힘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변제할 수 있게 열심히 일해서 갚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