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개인회생을 했지만 쪼달리는 생활비며 변제금을 감담 못해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

성공사례

1년 전에 개인회생을 했지만 쪼달리는 생활비며 변제금을 감담 못해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

이장헌법무사 0 1,309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8ef3be6a50e5f13db3cd501b5e535d77_1679395464_9717.jpg




1.이름 **

 

2.월 평균수입 : 2,000,000

 

3.총 채무액 : 69,629,598

 

4.월 변제금 : 204,812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11%



신청인은 서울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며 부모님과 저 이렇게 세식구로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서울 **대학)까지 서울 성북구 **동에서 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공인중개사를 업으로 하셨지만 수입이 거의 없으셔서 가정형편은 넉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항상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하셨지만 그래도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침 서울 **동에 재개발이 되면서 저희 세식구는 서울살이를 모두 정리하고 경남 양산시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생활 터전이 바뀐터라 저희 식구는 수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10년 전에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앞이 정말 막막했습니다. 다시 양산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부산의 월세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한번도 직장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늘 품안의 자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10여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저만 남게 되면서 이제는 어머니를 제가 부양해야 되는 상황이 오자 정말 앞이 막막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어떤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건강이라는 곳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성실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능력에 따라 매달 급여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급여가 적은 달에는 정말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 조차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라 하루도 결근 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실히 일해도 급여는 우리 두식구 생활하기에는 매달 부족했고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카드(삼성카드)발급받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생활하면서 또 힘들어지면 현금서비스를 받아 사용하고 감당 못하는 금액은 할부로 끊어 사용하다보니 할부 금액도 점차 불어났습니다. 점점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부산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카드 값을 갚고 또 카드를 발급받아 돌려서 막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빚이 산더미같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사금융인 대부업체 (**저축은행)에서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서 갚고 그 다음달 급여로 충당이 되지 않아 또 다시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반복적으로 갚았습니다. 결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제 능력으론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의 나날만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일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눈물만 났습니다. 독촉전화와 문자가 오기 시작했고 마음은 더욱 힘들어지고 직장 생활이 힘들 정도로 고통만 커져갔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약속과 신용은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만 제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1년 전에 개인회생 신청을 하여 결정이 되었고 매달 변제금 80만원 정도를 갚아나가야 할 상황인데도 역시 코로나로 인해서 힘든 생활만 반복되었습니다. 몇 달 겨우 충당해서 갚다가 결국은 수입이 더 줄어드는 바람에 기본 생활도 안 되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아 변제금과 생활비로 충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생활조차도 힘들다보니 마지막으로 회사에다 가불을 신청하였습니다. 그 또한 거절당했고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매일 눈물만 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십니다. 당뇨, 혈압이 있으셔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으실까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알고 계시고,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마음이 무너집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는 걸 뒤늦게 후회하게 되었습니다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머니 모시면서 열심히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발 저의 가정을 지켜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