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음향회사에 취직하여 뒤에 음향회사를 차렸지만 미수금으로 고생하다가 도박에 빠지게 되어...

성공사례

군 제대 후 음향회사에 취직하여 뒤에 음향회사를 차렸지만 미수금으로 고생하다가 도박에 빠지게 되어...

이장헌법무사 0 1,266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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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800,000

 

3.총 채무액 : 41,382,465

 

4.월 변제금 : 300,000

 

5.변제횟수 : 60

 

6.변제율 원금의 44%




신청인은 경남 마산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박**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 그리고 동생, 제가 어렸을 때 저희 가정은 누구보다도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사기를 당하시고 집안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쫓기듯이 부산으로 내려와 생활하기 시작했고 저는 고등학교를 공고로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어린 나이이지만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학교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첫번째 직장은 **음향이라는 곳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빨리 배워서 뛰어난 엔지니어가 되고자 노력 하였습니다. 그러다 회사에 인정받기 시작했고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회사에 재정난에 폐업을 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직장은 첫직장과 같은 업종인 **음향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던 중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가정과 회사에서 안정이 되다보니,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조그마한 아파트지만 융자를 받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못살다 보니 잘살아보자는 욕구는 더 강해졌고 지금까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다 보니 그 욕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가족들의 권유로 아파트를 처분하고 직접 회사를 꾸려나가기 위해 주변 지인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사운드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히게 되고 장비는 사야하는데 수금은 잘 안되고 결국 회사운영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힘든 생활에 집사람과의 의견차이로 인해 잦은 다툼이 생겼고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혼이라는 힘든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결국 유지하지 못하고 빚만 남겨진 채 9년 만에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갈 곳이 없던 저는 딸아이를 어머니 집에 맡기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양산에 있던 *** 조명이라는 회사에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랑 친한 형님도 부산에 살고 있었지만 양산으로 가서 같이 살자고 권유했고 돈이 없어 난감해하는 저에게 자신이 집을 살테니 저에게는 약간의 월세와 생활비만 충당하라고 했고 공동명의로 해서 나중에라도 집값이 올라서 팔게 되면 조금은 챙겨주신다는 말에 양산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어려움으로 7개월간 월세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고 어머님께서 방황하지 말고 집으로 오라는 말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어머님과 딸 그리고 저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힘든 생활에 방황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비트코인과 스포츠 토토를 하게 되었고 처음엔 재미로 하던 것이 점점 더 욕심을 내기 시작하였고 그 욕심만큼 빚이 더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금액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염치없지만 가족들과 상의를 했고 친형님도 넉넉하지 않지만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기 싫으시다며 본인도 대출을 하셔서 돈(천만원)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족들이 보이더군요. 미래는 어둡게만 보였고 딸과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 안쓰러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저를 믿어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과 편히 살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마음이 너무 서글픕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하여 생활 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높은 금리 대출들이 나의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할 줄 몰랐고 헤어 나오지 못할 늪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유롭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어 왔습니다. 그래서 제 딸에게만큼은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것도 아닌 게 능력도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족에게 이렇게 큰 고통이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한 가정을 책임 져야할 가장으로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나의 가족 또 나 자신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