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경기불황에 직장은 폐업하고 퇴직금도 못받고 일용직을 전전하게...

성공사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경기불황에 직장은 폐업하고 퇴직금도 못받고 일용직을 전전하게...

이장헌법무사 0 1,385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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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2,475,034

 

3.총 채무액 : 165,673,596

 

4.월 변제금 : 751,654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23%




신청인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농사를 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입니다. 누나 3명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아버지는 장남으로 태어나 저희 가족보다 친가쪽 가족을 더 챙기셨고 그러다보니 저희 집은 늘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고향인 군산을 떠나 4살 때 쯤 부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도시생활은 험난했습니다. 저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공업고등학교를 진학했고 졸업하고, 용접 일을 시작했지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일을 하다가 무릎 전방 십자인대를 다쳐 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몸이 아픈 상황이었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하지만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결국 돌아가셨고 집은 더욱 가난에 허덕이고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수는 없었습니다. 집안에 남자라고는 이제 저 하나였고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가 지켜야 했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기술도 배우면서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그러던 중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형편이 여의치 않아 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도 태어나면서 저도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그리 장밋빛이 아니었습니다.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금도 못받고 그만두게 되었고, 이직과정을 거치면서 오랜기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일용직 일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나마도 허리에 통증이 오며 못하게 되면서 병원치료비며, 생활비가 없어 대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빚으로 생활하던중 운좋게 다시 공장에 기술직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또 1년만에 폐업을 하게 되었고 저는 또 다시 실업자가 되어 일용직을 하며 이직을 알아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생활은 더 어려워져만 갔고 대출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사용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로 불어난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습니다가족과 함께 같이 살기 위해 일이 힘들어도 버티고 살고 있는데 커져가는 빚 때문에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면 저도 제가 참 한심합니다. 후회와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이 힘들어하고 있는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있는 아이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파 눈물과 한숨 뿐인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냥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빚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딱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옛날처럼 그렇게 바보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라도 아끼고, 또 기술을 더 배워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금 하고있는 일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으며 밤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발 기회를 주신다면 아끼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 아이에게 못난 아버지가 되고싶지 않습니다.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아이와 아내에게 행복한 가정을, 밝고 희망 가득한 미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