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왔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성공사례

열심히 살아왔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이장헌법무사 0 1,486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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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954,930

 

3.총 채무액 : 203,704,805

 

4.월 변제금 : 500,000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18%




신청인은 19658**일 부산에서 22녀 중 장남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피난민으로써 저희 4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생활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 형제들 모두가 유년시절과 초등학교 시절을 다복하고 행복하게 지냈고 큰 어려움 없이 학업에 전념하여 누나도 대학에 진학하고 저도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피난통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저희 형제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금전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습니다, 밑으로는 두 동생과 또한 누나와 저의 대학 학비 감당하기가 정말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1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군대에 지원입대 하였습니다. 30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였으나 또 밑에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부모님께서는 너무 힘들어 하셨지만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누나와 저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주식회사 ***이라는 수입 의료기 판매 회사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진급도 남들보다 빨랐고 해외 출장도 갈 수 있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저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였으나 회사의 무리한 영업 투자와 사세 확장으로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뜻과는 상관없이 5년간의 첫 직장생활이 마무리 되어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으나 그때 당시는 일 자체가 어렵지 않고 나름 재미도 있어 다른 의료기 회사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직장에서 다시 한번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였고 회사와의 갈등으로 몇 번 더 이직을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 결혼도 하여 11녀의 자녀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던 중 의료기 업계에서 잘 알고 지내던 동생이 동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에 흔쾌히 승낙하고 난생 처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확보되어 있는 거래처와 고객도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사업도 조금씩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주위에서 동업은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나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저에게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동업을 제안했던 동생이 혼자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동업 파기를 하였고 저는 또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이라는 의료기 회사에 관리 부장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였으며 회사에 공헌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회사는 병원과 관련된 개원업무에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 폭 넓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불운하게도 생겨서는 안 될 일이 저에게 생겼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내원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불행히도 대장암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병원 관련 일을 하였기에 빠르게 수술을 하여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없었고 산더미 같이 쌓여가는 병원비가 문제였습니다. 물론 조그만한 암 보험은 있어 당장은 꾸려 나갈 수가 있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살기가 힘들었는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왔습니다. 저는 이혼 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이혼을 하였고 두 자녀는 고스라니 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연로하신 부모님께 의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 치료 과정에서 너무도 고통스럽고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암 치료 과정은 5년이 되어야 완치 선고를 받지만 생활고로 인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신용 등급이 워낙 좋아 대출도 가능했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충당했습니다. 당연히 몸이 완치 되면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남에게 빚이라고는 한 번도 가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수술 후 3년쯤 지났을 때 몸이 조금은 회복되어 다시 사업을 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용 보증 기금에 가서 사업 자금 대출을 신청하여 의료기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기금의 대출금을 조금씩 갚으면서 사업을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금 이자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만들 수 있는 돈은 다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몸도 불편한 상황에서 제 사업은 실패하였고 제가 무너졌을 때 가족들의 눈물이 아직도 눈에 선 합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커서 저의 상황을 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저의 불찰로 인해 저에게 피해를 본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비록 지금은 얼마 벌지 못하지만 늦게나마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로 제가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에서 속죄하고 싶습니다. 늘 눈시울을 적시며 너 신용불량 끝나는 것 보고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들고 아이들의 아빠로써 한가정의 가장으로써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제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실 것을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