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부터 행방불명된 처남을 대신해 처조카를 데려와 키웠는데 처조카가 커가면서 사고를 쳐서 대출을 받다보니....

성공사례

결혼 초부터 행방불명된 처남을 대신해 처조카를 데려와 키웠는데 처조카가 커가면서 사고를 쳐서 대출을 받다보니....

이장헌법무사 0 1,419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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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3,392,768

 

3.총 채무액 : 238,513,893

 

4.월 변제금 : 1,597,580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35%




신청인은 1966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3살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자랐습니다. 1983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배우지를 못하였기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1993년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2009년 어머니께서도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2012년 

지금의 직장에 취직을 하여 나름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으로 일하였습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관리 자격증

위험물 자격증, 소방안전 관리사 등을 어렵지만 힘들게 취득하면서 승진도 하였습니다. 아내는 26살 때부터 오빠의 자녀인 조카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아내의 오빠는 24년 전 이혼을 하면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아내 혼자서 조카를 키우며 살던 중 저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조카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그러나 처 조카가 20살 때부터 사고를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합의금, 변호사 

비용 등으로 인하여 가정이 어려워지면서 2016년 대출을 처음 받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빚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20185월 혼자 

계시던 장인어른마저 뇌출혈로 쓰러지시게 되면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었고 2018년 또 다른 대출을 사용하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게 부채가 

늘었습니다. 2019년 대출을 또 받으며 조금이라도 이율이 낮은 곳을 찾으며 돌려막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 2017년 회사가 어려워 퇴사를 하게 되었고 퇴직금 1800만원으로 대출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주식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퇴직금은 지금 현재는 거의 다 잃어버리고 없는 상태로 이후 빠르게 회사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배우자는 저를 만나 고생만 하며 열심히 살다가 건강이 좋지 못하여 2016년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며 사회활동도 제대로 하질 못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98월에는 허리 협착증으로 인하여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며 아직까지도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 베풀며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자신이 못났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집사람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사회에서 꼭 필요한 한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도움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