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높은 대출이자로 하루하루 생활고에 지쳐가..

성공사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높은 대출이자로 하루하루 생활고에 지쳐가..

이장헌법무사 0 1,416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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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1,500,000

 

3.총 채무액 : 58,041,102

 

4.월 변제금 : 403,301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25%




신청인은 부산에서 11녀 중 차녀로 태어난 차**입니다. 우리 집은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뇌에 양성종양이 발견되면서 저희 집은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 졌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빚을 내어 아버지의목숨을 건 대수술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 곁에서 간병을 하였습니다

어린 맘에 너무 속상하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공장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대학을 진학하라고 하셨고 저는 가고 싶은 학과를 정하고 수능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였습니다. 이때쯤 부모님은 불화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병석에 계시면서도 계속 

사치만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를 몇 번이고 말렸지만, 아버지의 사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 생활 중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학교에서 인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제가 재학 중인 대학교에 

오셔서 일을 하고 싶은데 핸드폰이 없으니 핸드폰을 사서 개통해 달라고 요청하셨고 아버지의 계속된 요청에 저는 제 명의의 핸드폰을 

개통해 드렸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후 아버지가 휴대폰으로 결제를 하고 연체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턴쉽을 하는 

동안에는 일을 하기가 마땅치 않아 주말에만 일을 하였고 이 금액은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함께 자취하던 

친구에게 월세를 빌려 냈고 이후에는 아버지 빚을 갚았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자 결국 아버지와 오빠가 있는 양산에서 등,하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등교 시 아버지께서 집 밖에 못 나가게 한 일이 있어 그 학기는 출석을 거의 하지 못해 처음으로 학사경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 학기 학자금 대출은 담당 교수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쯤 졸업 조건이 

바뀌어 졸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울산으로 가서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살며 근근히 외주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였습니다. 이때쯤 우울증이 

심하게 와 몸을 추스르길 1, 이후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취업을 하며 친구에게 빌린 월세와 생활비를 갚았고 대출을 받아 생활하며 빚을 

줄이기 위해 더 저렴한 월세로 이사하였습니다. 처음 일하게 된 직장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였으나 점점 몸이 좋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고 

이후 병원에 다니며 일을 알아보던 중 보험설계사가 되었습니다. 보험설계사를 준비하면서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어 또다시 대출을 

받았습니다. 보험 일로 빚을 갚기 더욱 힘들어지니 아르바이트비와 병원 치료비로 나온 보험금으로 빚을 갚으니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하루하루 벌어 빚을 갚고 돈을 갚느라 온 신경이 몰렸습니다. 정기적인 일을 구하였지만 회사의 사정으로 해고를 당하고 결국 정기적인 일을 

찾지 못해 일용직 일을 하면서 통증이 생겨도 진통제를 먹으며 일을 하였습니다. 가족에게도 이런 사정을 얘기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앞날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선택과 생각으로 힘든 상황이 되었고 높은 금리의 대출들이 제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많은 고심과 가족간의 상의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여 어머니와 오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본인 가슴이 찢어진다고 

마음 편히 지내시지도 못하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어려움에 지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제 

능력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큰 고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나의 가족, 나 자신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