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으로 발령받으면서 그당시 관행이었던 접대를 신용대출을 받아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성공사례

영업직으로 발령받으면서 그당시 관행이었던 접대를 신용대출을 받아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장헌법무사 0 1,528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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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2.월 평균수입 : 4,250,960

 

3.총 채무액 : 101,294,774

 

4.월 변제금 : 1,928,613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원금의 69%




신청인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동에서 2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김**입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시는 아버지와 가정주부이신 

어머니, 형과 여동생, 이렇게 5식구로 가난하지만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시고 사업을 시작하

셨는데, 사업실패의 여파로 간경변을 얻어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급속도로 집안형편이 어려워져 4식구가 옥탑방 생활을 하였

습니다. 어머니와 형은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 저와 여동생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였고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1년 뒤 

**대학교 야간에 입학, 주경야독하며 대학교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공익요원 만기 전역 후 어머니께서 갑자기 폐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도 일찍 여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제가 졸업하는 시기에 IMF가 와서 취업할 곳이 없었습니다. 첫 직장으로 현재 근무 중인 *****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하였지만 

정말 열심히 일해 모범 사원상도 2번이나 받았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지만 형편이 어려워 집을 구하지 못하고 

처갓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는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며 11녀를 출산했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처갓집을 처분한 돈과 대출을 내어 지금의 아파트를 구매하였을 땐 온 가족이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2011년에 부서 이동을 

발령받고 영업직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하는 영업 일이라 서툴고 대인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접대(선물)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시기였기에 회사에서는 따로 영업비를 지원해 주지 않았고 지원해 줄 형편도 아니었습

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개인카드를 사용하며 근무를 이어나갔습니다. 갈수록 불어나는 카드 값을 감당할 수 없어 2012년부터는 

신용대출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지원없이 계속 영업 업무를 하다 보니 대출금을 상환하기가 힘들어졌고 또다시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먼저 대출금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서 퇴직금을 중도 정산하고, 보험해약, 지인에게

까지 빌려가면서 최대한 갚으려고 노력하였지만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족의 미래가 어둡게만 보였고,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 안쓰러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를 믿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아내에게 마음 편히 

살게 해주지 못하고 채권자들의 독촉장, 가압류 등에 시달리게 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습니다. 잠시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지만 

가족들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으로 인하여 저희 가족은 생활조차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매일 눈물로 생활하고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딸도 저 때문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높은 금리의 

신용대출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이었고, 그것이 나의 생활과 가족을 파탄에 이르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가난과 어려움에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내 아이들만큼은 저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든 영업 업무였지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카드를 사용하였고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족들에게 이렇게 큰 고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아이들의 아빠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다시 한번 일어 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가족들만 생각하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제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