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하여 3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

성공사례

고등학교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하여 3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

이장헌법무사 0 1,501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d981ef06c3957c6a77c90bb7c22217ec_1667818995_3578.jpg




1.이름 ** 

 

2.월 평균수입 : 1,500,000

 

3.총 채무액 : 450,746,377

 

4.월 변제금 : 250,000

 

5.변제횟수 : 48

 

6.변제율 원금의 14%






신청인은 경남 함양군 **면에서 15녀 중 셋째로 태어난 최**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었고 중학교 졸업 후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며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운이 좋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다니던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었고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관리자로 승진을 하게 되면서 ()**산업사이라는 회사에서 13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습니다.

 

남편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나 고등학교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했고 23살 되던 해에 첫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남편은 철도 없었고 기본적인 성향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철없는 나이에 만나 마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군 제대 

후 직장을 다니기는 하였지만 집에 생활비를 한푼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저에게서 돈을 뜯어갔습니다. 이런 생활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도 계속되었습니다. 신용 불량자에 심지어 제 카드를 몰래 가져가 쓰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해 집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음주 운전으로 벌금을 해결해 주고 나면 다시 다른 건을 터뜨려오고.. 정말 힘 든 시간이었

습니다. 끝이 없는 이런 생활을 하다가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돈 달라는 곳은 많고 어린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고금리의 돈을 빌려 썼습니다. 사택에 살고 있었는데 직장을 그만두니 당장 거주할 집이 없어 돈도 없고 하여 월세 10만원하는 

방 한칸 짜리를 얻어 아들 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돈을 해달라고, 음주운전에 

무면허로 사람을 쳤으니 합의를 봐야한다고..

 

제가 가지고 있는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 남편에게서 오는 연락을 무시하고 모른 척 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이 교도소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시어머니와 교도소에 면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생각지도 않은 셋째 아이가 생겼습니다. 아이를 지우고 싶었지만 

시어머니께서 키워주신다고 하셔서 출산을 하게 됐고 월세집에 살던 짐을 그대로 시댁으로 다 옮겨 그때부터는 시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교도소에 면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우리 가정은 생각지도 않았고 다른 엄마뻘 되는 여자 생각뿐이었습니다

교도소 출소 후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술을 끊지 못해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밖에서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헛소리도 하고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통에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애들을 봐서 참고 살았습니다. 남편의 행패가 지속되자 시아버님께서 남편을 알코올 중독으로 봉생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병실을 지키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자꾸 커가고, 생활은 점점 힘들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 남편을 학장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까지도 저에게 온갖 욕설과 폭행을 

행사했고 병원에 있는 동안 저를 몇 번씩이나 인권위원회에 고발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병원에서도 퇴원하고 몇 달 

되지 않아 또 술을 먹고 저를 때리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저는 참지 못해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온 후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거 할 곳도 없어서 조카집에 얹혀 살다가 아는 지인 집에 

살다가 지금까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 걱정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연락이 되지 않자 제 동생에게 협박

전화와 문자를 자주했었습니다. 무섭고 소름이 끼쳤고 아이들에겐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얼마 전 친구의 도움으로 이제는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개인회생을 결심했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과 실수로 아이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늦었지만 앞으로 아이들의 엄마로써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