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불황으로 퇴사 후 택배 상,하차 일을 했는데 너무 힘든 작업환경에 하루 일하고 하루 앓아누워야...

성공사례

조선업계 불황으로 퇴사 후 택배 상,하차 일을 했는데 너무 힘든 작업환경에 하루 일하고 하루 앓아누워야...

이장헌법무사 0 1,665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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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 

 

2.월 평균수입 : 1,800,000

 

3.총 채무액 : 76,075,966

 

4.월 변제금 : 703,301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 원금의 59%




저는 부산에서 부유하진 않지만 평범한 가정집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난 김**입니다.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와 주부이신 어머니,

현재 구직중인 저보다 5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유하진 않았지만 평범하게 유년 시절을 보내고 2번의 이사를 거쳐

화명동으로 가족 모두가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예체능 전형으로 부산 **대학교 음대를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반년만에 휴학 후 20066월에 군입대를 하였습니다. 군 제대 후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기숙학원에서

6개월 공부를 하였고 부산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가 영도에 있고 제 집은 화명동이라서 두 달 정도 통학을 하다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왕복3시간)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4년 동안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술, 담배 등은 일절 손도 대지 않았는데 자취를 하게 되니 담배도 피고 술도 먹고 공부를 하겠다는

때의 다짐은 없어지고 하루하루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기 중 통닭집에서 배달도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생활비도 받았지만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소비는 과해지고 어떤 날은 일주일 동안 감자만 먹고 산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휴대폰으로 날아오는 불법대출 광고에 혹해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휴학을 하고 학기 중에 공장에서 일을 해서 처음 빌린

대출은 갚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수입이 적으면 아껴 쓰고 계획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펑펑

쓰며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휴학을 반복하며 6년 만에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제 첫 직장인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 사람들은

평범한 회사에서 정장입고 출근하는데 저는 생각 없이 살아서 힘든 3d 업종이 제 첫 직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자괴감에 빠졌고

제 인생을 포기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는 도중 회사 대표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저는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저금이라는 걸 애초에 하지 않았던 저는 당장 생활을 해야 했기에 대출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출금을 모두 생활비와 과소비로 인해 점점 더 대출을 받게 되며 결국 이자만 한 달에 100만원씩 내야 하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한 달에 300만원 벌어서 이자 100만원 내고 100만원씩이라도 갚아야지라는 생각했지만 조선업계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되면서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고 그렇게 저는 순식간에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2년 동안 분명히 한 회사에서 같은 동료들과 같은 일을

하였지만 회사 측에 교묘한 장난으로 인해 퇴직금은 물론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돈 한 푼 없이 빚만 잔뜩 생긴 상태로

2016년에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실직자가 된 후 다시 화명동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저는 하루하루 이자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문자와 전화 독촉으로 정신은 피폐해져 갔고

그렇게 생활비도 한 푼 없어 일용직이라도 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녁 6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는 택배 상하차를 하게 되었고

너무나 힘든 작업환경에 하루 일하고 하루 앓아눕는 상황을 반복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이자라도 갚아보자는 생각에 실직 후 첫 달은 갚았지만

그 다음 달부터는 이자초차 낼 수 없는 생활이 2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피폐해져 있던 정신에 새벽일에 몸과 마음이 너무너무 고통스러웠고

너무 많아진 빚과 이자로 인해 전 인생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2년 동안 정말 힘들게 일하던 도중 허리를 다쳐 더 이상

택배 상하차 일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20182월 저는 한샘 쇼파 배달(하청-개인사업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던 중 전 결국

통장이 압류당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사는 건 더 이상 사람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고 본가에 저의 그동안의 상황을 모두 이야기하고

무릎 꿇고 울며 그동안의 일을 부모님께 사죄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용서해 주셨지만 저의 불어난 빚은 저의 부모님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한 일을 부모님에게 짊으로 돌리기 싫었습니다. 이때 저의 어머니가 여수에 조그마한

땅을 사서 제 명의로 해두신걸 처음 알았고 이 땅도 결국 제 것이 아니니 어머니께 다시 돌려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말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새 직장에 취직하며(2019122)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한 부분이고 제가 인생을 헛되이 살아 이렇게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온 것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금까지 한 잘못을 모두 책임지고 하루하루 성실하고 열심히 살면서 제가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반성하며 뉘우치면서 살겠

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너무 많은 잘못들로 인해 부모님을 피해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제대로 아버지,

어머니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삶을 뒤로 하고 평범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정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곧 아버지께서도 정년퇴임이신데 이제 집안의 장남으로써 제가 저희 집을 책임지고 이제 성실하고 열심히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

살아생전 보실 수 있게 제발 도와주시길 눈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