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화물차를 캐피탈로 구매를 했는데 고장이 잦아 수리비용과 화물운임비 미수금으로 또다시 대출하게 되어

성공사례

중고화물차를 캐피탈로 구매를 했는데 고장이 잦아 수리비용과 화물운임비 미수금으로 또다시 대출하게 되어

이장헌법무사 0 2,034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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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

 

2.월 평균수입 : 2,650,000

 

3.총 채무액 : 172,967,301

 

4.월 변제금 : 327,653

 

5.변제횟수 : 36

 

6.변제율 : 원금의 8%




신청인은 부산 사상구 **동에서 2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오**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 저 이렇게 4식구이고 제 기억에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공장을 하시고 계셨는데 항상 바쁘셔서 그랬던 건지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부산 *포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나 어머니는 저와 형을 두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 뒤로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셋이서 살게 되면서 고등학교 진학을 하였지만 집안사정도

넉넉하지 않아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나이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토바이 타는 일뿐이었습니다. 철이 없을

때였고 마냥 오토바이 타는 것이 재미있어 배달 일을 하면서 생활비, 용돈을 직접 벌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형도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었는데 형의 교통사고 현장을 제가 목격하여 백병원으로 이송 후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교통사고로 인해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런 형을 옆에서 지켜보며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일을 하시면서도 병원을 하루에

몇 번 씩 왔다 가셨고 돈을 벌 때마다 병원비 계산을 하시느라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도 보탬이 되고자 형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다 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형은 퇴원을 하게 되었고 형은 장애 2급을 판정 받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형은

팔을 쓸 수가 없다는 무서움에 집밖을 나가지 않았고 제가 일해서 벌은 돈으로 형까지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군대를

가야했으며 형은 어머니가 책임을 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군 제대 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작은 월세집에서 3년 동안 동거를 하였고 2013년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 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서로 욕심없이 직장생활하면서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전밖에 없어 항상 운전하는 일을

하였고 와이프는 경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희 어머니의 권유로 야식이라는 배달장사를 하게 되었고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재미도 있었습니다. 2년 동안 밤낮이 바뀌어 야간에 일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고 경기도 점점 안 좋아져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계속 둘이서 야식 장사를 할 수 없었기에 저는 현장 일을 하러가게 되었고 와이프 혼자서 야식을 하게 되었

습니다. 몇 달 동안 해보니 야식은 늦게까지 해야 돈을 벌수가 있는데 와이프 혼자서 야식장사를 하기엔 무리였고 배달도 점점 줄어들어

장사를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인분의 소개로 거제도에 있는 휴게소에 취직을 하였고 배우자도 같이 거제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첫째 아들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였지만 거제도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여서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대형차를 운전해 보고 싶어서 화물운송 자격증을 취득하고 운수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와이프는 개인사업자를

내고 화물차를 구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를 했지만 저는 그때 와이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새차를 구입하기엔 너무 큰 무리여서 제가

다니고 있던 운수회사 소장한테 추천받은 중고화물차를 캐피탈로 구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 가며

제가 운수회사 소장한테 사기를 당한건지 차 금액에 비해 차 상태는 너무 안 좋았습니다. 차 구입 후 1달도 되지 않아 차가 고장나기

시작하더니 수리하면 또 고장 나고 하기를 무한반복이였습니다. 차 수리를 해서 운행을 해야 했기에 와이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갚고를

계속 반복, 차를 수리하는 비용은 점점 커지고 카드한도는 이미 다 찼고 하는 수 없이 카드론이라는 대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은 일대로 줄어들고 차는 차대로 말썽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도중 제가 소속되어 있던 운수회사 소장하고 문제가 생기면서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화물 어플을 사용하면서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화물차 할부에 수금은 안되고 그러다보니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고 갚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앞이 캄캄했습니다.


여유가 없으니 첫째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 가지고 싶다는 물건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생겨 출산을 하였고

와이프는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몸조리도 제대로 못해준 게 가슴에 응어리가 졌습니다. 그러면서 채권자들의 독촉전화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였습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과 선택으로 우리가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많은 대출들로 인해 나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힘들어질 줄 몰랐고 열심히 하면 갚아나갈 수 있을거라는 착각에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와 와이프는 많은 생각끝에

이렇게 살기보단 개인회생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온 저는 제 자식들에게만은 이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고

그것이 나와 와이프 아이들에게 큰 고통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갚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한번만 더

돌아봐주시고 살려주세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