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기초수급자가 되어 어린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투잡까지 했지만....

성공사례

이혼 후 기초수급자가 되어 어린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투잡까지 했지만....

이장헌법무사 0 1,575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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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 정**

2. 채무액 : 52,707,307원




저는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2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정**입니다. 성실하신 아버지 인자하신 어머니, 두 언니, 두 오빠 밑에서 부유한 형편은

아니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지셨고 병원으로 갔지만

처음에는 병원에서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큰 병원으로 옮겼을 때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대수술을 받으셨고 재활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집안 형편은 점점 힘들어져 살던 집까지 경매로 잃고 월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해운대 *** 백화점의 직영사원으로 입사하여 3년을 근면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24살에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을 만나 1998년에 결혼하고 1999년에 큰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시기 IMF로 인해 남편의 장사는 망했고 저희는

신용카드와 대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둘째 출산 이후 빚으로도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고 결국 저는 아이들과 친정으로,

아이들 아빠는 본가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남편은 술에 의존하여 생활하다 폐인 아닌 폐인이 되었고 저희는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술에 의지하여 사는 아빠에게 아이들 양육을 맡길 수 없어 아이들을 책임진 저는 망가져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양육비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신용회복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여자 혼자 힘으로 수급비를 받고 두 아들을 키우며 달세, 공과금 등을

납부하려니 수급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리고 수급비를 받고 있으니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잡까지 했지만 아이들은 점점 크고

남은 빚을 갚으며 열심히 살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기회가 왔습니다. 재혼하기로 결심하였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지만

상대는 초혼이고 저는 두 아이의 엄마였기에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저 혼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기 아빠는 조선소 일을 했는데 조선소 상황이

나빠져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락두절이 되었습니다. 아기가 있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였고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대출을 받고 카드로 생활하다

지금은 대출금 이자로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희 막내아들이 이제 겨우 3살입니다. 3명의 아들들한테 버팀목이 될 사람은 이 세상에 오로지 저 하나뿐입니다. 부디 저에게 조금이라고 짐을 덜

기회를 주시기를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제게 기회를 한번만 더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희 가정과 아들 둘, 어린 막내 아들을 지킬 수 있도록 눈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