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정리해고와 거래업체와의 계약해지로 상환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성공사례

두번의 정리해고와 거래업체와의 계약해지로 상환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장헌법무사 0 1,405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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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 주**

2. 채무액 : 60,490,270원




신청인은 충북 괴산 **읍에서 시골 농사일을 하는 집안의 넷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주**입니다. 조부님과 부모님 그리고 세분의 누님과 남동생둘

저의 집안은 많은 농토를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사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학구열이 대단하시어

저희 자녀 6명을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였으며 저는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농사일을 직접 하지 못하시고 남의 손을 빌려 농사를

지으시니 저희들 학비조달로 인하여 농토는 줄어들어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대학입학 후 서울에 계신 큰 누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2학년 진학 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여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서울 구로동에 계신 5촌 당숙께서 비닐공장을

세우시어 도와 달라 하시어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비닐공장에서 2년 동안 일을 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고 이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군에 자원입대 하여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첫 직장인 기아**()에 입사하였습니다. 입사 후 영업부 서비스과에 배정 받아 열심히 근무하였으며 전국 오토바이 수리점을 방문하여

혼다 지정 수리점을 선정하여 교육하였으며 우수사원으로 일본 혼다에 연수교육도 다녀왔습니다. 직장 생활 중 결혼도 하여 딸아이도 갖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모기업인 기아산업의 경영실적 저조와 국가의 자동차 산업 합리화 방안의 일환으로 저희 회사와 대림 자동차의 합병으로 인하여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직장은 대**의 계열사인 선**()로 컨테이너 운송을 전담으로 하는 운수 회사였습니다. 부산에 소재하고 있어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회사 수송과에 배속되어 수송관기업부에 근무하였으며 과장으로 승진 후 운수과장, 장비과장, 수리팀장 등에 근무를 하였습니다. 모기업인 대한**의 경영부실로

인하여 ()**과 합병되었습니다. IMF로 인하여 각 회사마다 명예퇴직이 이루어졌으며 아웃소싱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년을 2년 남겨 두고 지게차

8대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퇴사하였습니다. **기업이란 상호로 지게차 8대를 3부두 4, 감만 부두 4대를 투입하여 상하 작업을 하였으나 적은 급여로

이직률이 높아 기사를 구하기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작업비용은 작업 후 1개월 후에 어음으로 지급받아 은행에서 할인하여 급여로 지급하고 아이들 학자금과

생활비로 충당하기에는 항상 부족하고 접대 등 잦은 술자리로 인하여 은행 대출 및 마이너스 통장으로 견디어 왔으나 갑작스럽게 지게차와의 계약을 해지 한다는

통보를 받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을 정리하고 나니 은행에서 채무변제통보는 계속되고 시골에 있던 집도 경매로 넘어 갔으나 채무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채무변제 독촉은 계속되었으나 변제능력이 없어 이자만 계속 늘어 갔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일용직을 2년가량 하였으며 그 후 환경미화원, 경비원으로 10년 이상 생활하였으나 나이가 70이 넘어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시니어 클럽에서 초등학교 등교 시 깃발을 들고 학생들의 등교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