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이라는 돈을 가게에서 빌리게 되면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성공사례

200만원 이라는 돈을 가게에서 빌리게 되면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장헌법무사 0 1,897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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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 오**

2. 채무액 : 220,355,600원



신청인은 1977년 *월  *1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오**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술만 드시면 어머니와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셨고

그런 남편과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어머니는 제 나이 8살에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저는 결국 외갓집에 맡겨졌습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를 대신해 모든 집안 일을 어린 나이 때부터 도맡아 해야 했었고 함께 생활하는 막내 외삼촌에게도 이유 없는 구타와 괴롭힘을 당해야

했습니다. 어린 저에겐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였고 엄마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입학할 때 쯤 엄마는

재혼을 하시고 저희 앞에 나타나셨지만 생활은 나아져 있질 않았습니다. 그저 잠시라도 저희와 함께 지내고 싶어 하시어 같이 지내기를 1년 쯤 됐을

무렵 엄마와 다시 헤어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동생과 저는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나의 현실이 너무 싫었지만 늘 내 자신보다는 불쌍한

우리 엄마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의지할 곳도 없던 저에게 이것저것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신경써주는 전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고 갑자기 닥쳐온 상황에 당황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엄마가 알게 되시면 마음아파 하실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하며 숨기고 지내다 결국 18살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며 지냈기에 병원 한번 가보지 못했던 저는 임신 중독에 걸려 위험했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저의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엄마와 부등켜 안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저의 소박한 꿈은 날아가 버렸지만

지금 앞에 놓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이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북 **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댁으로 들어가 시부모님을 모시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이 늘 바쁜 시골 생활이였기에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고 아직 어린 제가 갓난 아기를 업고

집안 살림과 일하러 오신 인부들의 점심까지 챙기며 시부모님께 사랑을 받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저만 보면 어렵게 사는

친정 흉을 보셨고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남편은 나이가 어려서였던지 늘 어머님과 한편이 되어서 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전 남편은 군대를 갔고 3년 가까운 시간을 아이와 둘이 시댁에 머물며 지냈지만 시어머님과의 갈등에 전 남편과의 싸움이 많아졌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4살 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저와 아이가 짐이 되는 것을 알았지만 갈 곳이라고는 친정밖에 없었습니다. 1년 가까이 아이만

돌보며 지내다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다 우연히 보게 된 신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손님을 상대하는 까페였습니다.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엄마께서 양쪽 팔을 크게 수술해야 되는 상황에 200만원 이라는 돈을 가게에서

빌리게 되면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갚아지지는 않고 빚은 더 늘어나게 되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조금 더 벌 수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당시 돈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썼고 김**라는 사람이 소개해 준 대전에서 출장마사지 일을 하며 여관 달방을 얻어 생활하면서

너무 무서웠고 빨리 벗어나려고만 했습니다. 빌린 금액의 이자가 너무 높아 갚아도 갚아지지를 않았고 500만원이 남았을 때 그곳에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뒤 저의 채무는 최**라는 모르는 사람한테 위임했다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곳을 나온 뒤 안마시술소의 카운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일하는 곳이 조폭인 **파가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카운터 일을 한 것밖엔 없었지만

나중에는 제가 성매매를 알선한 것처럼 되어 있었고 그러다 구치소에서 4개월을 살다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그 곳에서 안정을 찾은 후 부산 초읍의 마트에서 일당직 일을 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우신염으로 인해 손발이 붓고 갑상선도 안좋은 상태입니다. 2018년 가을쯤에는 자궁에 한 혹으로 인해 수술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계속적인 일은 하지 못한 채

주위 아시는 분 가게에서 3-4시간씩 잠깐 잠깐 일하고 있으며 생활비도 아는 지인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적으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잘 쓸 수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삶을 살다보니 어디 가서 제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도 없었고

사랑을 받고 크지 못하다 보니 늘 외로웠습니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이지만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살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남은 제 삶에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고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