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제율이 원금의 12%로 결정된 사례

성공사례

변제율이 원금의 12%로 결정된 사례

이장헌법무사 0 1,961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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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 **

 

2. 채무액 : 239,245,932

 

3. 월평균소득 : 2,850,715

 

4. 월변제금 : 594,695

 

5. 변제기간 : 48개월

 

6. 변제율 : 원금의 12%





저는 경북 김천시 **면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2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입니다. 제가 2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 두 누나와

함께 부산으로 이사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4남매를 키우시기 위해 부모님은 항상 맞벌이를 하셨고, 누나들과 저는 어린 나이지만 집안 일을

나누어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군 위탁 장학생으로 지원하여 학비를 면제 받으면서 고등 교육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졸업 전 취업이라는 선택을 해 주야로 일할 수 있는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계를 잘못 작동해 실수로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 입대를 하였고 자대 생활을 5년 가까이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다수의 표창장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근무하면서 받았던 월급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만 쓰고 저축하여 제대 할 때는 제법 큰 금액을 모아서 제대하고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전역 후 첫 직장은

**제과의 영업직으로 열심히 근무하여 윗 상사분들께 인정도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배워가고 있던 중 생각지도 못한 병이 생겨버렸습니다. 너무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위장병과 물건 등을 들었다 놨다하는 반복된 자세로 인해 허리의 통증이 와 첫 직장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위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픔도 경험하게 되면서 늘 고생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빨리 취직을 해서 그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때 쯤 친구의 권유로 업소용 주방기구를 제작, 판매하는 ***방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책임감 있는 하는 성격이라 직장에서

빨리 과장으로 승진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경리업무를 담당하던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홀로 계시는 어머님과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미혼일 때와는 달리 가정을 이루다 보니 이제 정말 내가 미래를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생활 보다는 조금 더 노력하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치킨 집을 창업했습니다. 12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하고

새벽까지 인근 주택과 아파트를 돌면서 전단지도 정말 많이 돌렸으며 10평 정도의 작은 치킨점에서 3대의 오토바이를 사용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집사람은 장사를 하게 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는지 여러 번 유산하게 되는 아픔이 겪었지만 그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의

첫째가 왔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치킨점에서 출산으로 인해 집사람이 빠져 버리면 장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3년 만에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정리하면서 작은 아파트도 하나 장만하고 작은 목돈도 마련했습니다. 집사람의 임신 출산으로 아무것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 어릴 적부터 믿고 지낸 친구의 부탁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게 그만 잘못되었고 그때부터 어려움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 후 저와 집사람은 형제들과 처가에서 돈을 빌려서 작은 분식집, 문방구 등을 해보았으나 생각처럼 수입이 발생하지 않아 어렵게 시작한 걸 접어야만

했습니다. 힘들게 지내고 있는 걸 아는 지인의 동업 제안에 같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게 처음에는 잘 풀려서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하고

동생들도 태어나 다복하게 생활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 과정을 봐왔던 친구가 자기도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투자금 3300만원과 대여금 2천만원을

받아 매달 투자에 대한 수익을 정확하게 배분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과 다르게 사업이 갈수록 힘들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고 거기에 들어가는 생활비도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그때부터 금융권에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잘 될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요. 한가정의 가장으로써 사랑하는 아이들과 집사람을 안심시켜야 하는 책임감도 컸습니다.


집사람과 많은 의논을 하면서 처음 시작한 치킨점은 그래도 정말 저희가 열심히 하면 세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많은 고심 끝에 지금의

치킨집을 오픈했습니다. 창업자금이 부족했지만 열심히 해서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모자라는 자금은 고금리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8년째 2시 오픈과 새벽 2시의 마감을 하면서 휴무일 없이 장사에만 매달렸습니다. 오랜 시간 오토바이로 배달을 해야 하는 탓에 항상 어깨와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통증과 마비증상으로 찾은 응급실에서는 허리디스크로 인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5일 정도 수술 후 입원치료를 하게 되자 하루하루 벌어 대출이자와 생활비가 충당이 되었기에 매장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배달의 비중이 높은

치킨집이라 배달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집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면서 영업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부채는 줄어들지 않고 늘 제자리

걸음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허리와 감각이 둔한 다리의 이상으로 최근 1년 전부터 한 달에 한번은 쉬는 날이 생겼지만 그런 것도 제게는 사치라고 느꼈습니다.

경제적인 것과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집 아이들의 휴식이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부모를 둔 탓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저희를 도와 매장 일을 시작했고 고2가 되는 첫째와 중3이 되는 둘째,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는 셋째.. 세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미안함과 죄책감이 듭니다.

슬프지만 지금도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가게에 들러서 1-2시간이라도 일을 돕 돕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보니 아이들이 훌쩍 자라 있고 부모로써

해준 것도 없는데 불평 없이 묵묵히 도와주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결혼하면 정말 내 아이들에게는 기쁨과 행복만 전해주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늘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책임감 있는 부모. 그건 제 신조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부채는 꼭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오래전 사업에

투자한 금액과 차용금에 대한 부분을 얘기해 저도 날려버린 투자금이 많았지만 친구 부부의 불화가 걱정된 저는 형식적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증을 써주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 크게 이의를 두지 않았고 매달 20만원이 넘는 이자와 원금 중 일부인 1,300만원을 갚았습니다. 대출이자와 지인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변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이것들만 해결하면 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새로운 상점들이

생기면서 점점 매출은 떨어지고 과도한 이자로 부채는 점점 늘어나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 최소한의 생활비도 모자르게 되면서 친구에게 3달의 이자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약속이행이 어겨지면서 친구는 부산지방법원 2019타5***5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결정을 받아 압류를 하였고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드 대금과 예금의

거래정지로 인해서 금융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당장 하루하루를 벌어야 하는 전 본사에서 물건을 받을 수 없었고 장사를 더 이상 하지 못하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열심히만 하면 끝이 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의 어리석음이고 저의 의지만으로는 정말 힘든 일인 걸 깨달았습니다. 저희 부부 둘이서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심한 끝에 개인회생을 결심하고 되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아직 한참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야하는 제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짐을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잘못으로 그 기회를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부모로써 아이들의 큰 기둥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이제껏

살아온 것 보다 정말 더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가겠습니다. 저희 부부와 저희 아이들에게 힘들지만 살아 갈수 있는 희망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