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장사가 안되서 접고,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개인회생신청한 사례

성공사례

코로나로 장사가 안되서 접고,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개인회생신청한 사례

이장헌법무사 0 1,957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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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 김**

2. 채무액 : 25,708,868원

3. 월평균소득 : 1,900,000원

4. 월변제금 : 135,017원

5. 변제기간 : 36개월

6. 변제율 : 원금의 19%




신청인은 1979년에 부산 서구 ***동에서 1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초, , 고를 부산에서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나이 많으신 어머니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27살에 전처를 만나고 전처의 외도로 작년 10월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전처가 있을 때도 혼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 항상 부족한 게 많았지만, 그래도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와 함께

인테리어 목수 일을 9년 정도 했고 그것도 생활이 힘들어 부산 신평에 있는 **이라는 염색공장에서 13년을 일하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대리라는 직책까지

올랐습니다. 그 무렵 살고 있는 집이 너무 오래되어 공사를 하는데 무리하게 은행대출을 받았고, 회사생활 몇 해 동안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병원비를 전액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그 때부터 카드빚이 많았지만, 그래도 직장이 있어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은 대출금도 잘 갚아나갔습니다.


다들 그렇듯이 염색공장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들어갔고, 저는 **이라는 회사에서 퇴사하였습니다. 퇴직금으로 대출한 금액은 다 갚았으나,

그동안 쓴 카드 값이 문제라 몇 달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친구들이 지방에서 조그만 장사를 해서 그쪽에서 직원으로 27개월을 일했습니다. 친구들 가게를 봐주면서

부산 집에는 1달에 2번 정도 올 수 있었고 먹고 자는 것도 가게에서 하였습니다. 올해 들어 코로나로 인해 장사도 잘 되지 않고 친구들도 힘들어해서 미안한 마음에 관두고

부산으로 왔습니다. 부산에 와서 전처 외도사실을 알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폐인 아닌 폐인으로 몇 달을 보냈습니다.

몇 달을 벌이가 없어 대출을 받아 카드 값을 내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이렇게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어머니를 생각하며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내서 직장도 구하고 열심히 생활하려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약직 일자리만 가능해서 한달 일해서 대출금과 카드 값을 갚으면 그것도 모자라 현금서비스를

받아 돌려막기하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이제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생활해보려 했는데

빚은 빚대로 많아지고 이제 가족들한테도 빌릴 때가 없어 이렇게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저도 잘못한 걸 알지만, 아버지 잘못 만나 고생하는 우리 두 아이들과 어머니 마음고생만은 안하게 하고 싶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가장으로서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