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로서 집안을 위해 노력했지만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된 사례

성공사례

장녀로서 집안을 위해 노력했지만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된 사례

이장헌법무사 0 2,078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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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김**

2.직업 : ***주식회사

3.월 평균수입 : 2,604,686원

4.총 채무액 : 107,841,780원

5.월 변제금 : 1,550,378원

6.변제횟수 : 36회

7.탕감금액 : 55,813,608원

8.변제율 : 58%


저는 장녀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 맡겨져 경남 고성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타지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은 저를 할머니 손에 맡기고 일을

하셨고 저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겨우 부모님과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아버지는 운수업으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중,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로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졸업 전 방학시즌에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2011년 첫 직장인 백화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돈만보고 취직을 한 곳 이라 집에서 직장까지 왕복 4시간 출퇴근을 견뎌내었고 차비와 밥값을 제외한 

급여 전부를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정맒 너무 힘이 들어 살이 10kg씩 빠졌지만 집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농약을 마셨고 위급하게 병원으로 후송중이라는 

어머니의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위세척을 하여 생명은 건졌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우울증에 빠지셨고 장녀인 저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습니다. 

엎친데 겹친다고 회사의 사정도 좋지 않아 폐업절차가 진행되었고 저 또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 의류나 패션 족으로 관심이 많았던 터라 롯데 계열사인 브래든에 명품판매직으로 재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더디지만 우울증 치료를 병행하며 차츰 회복을 하셨습니다. 다시 일을 하기위해 기존에 하던 운수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쌓였던

빚으로 인해 신용이 좋지 않아 사업자를 낼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당시 남자친구에게 사업자를 대신 내어달라 부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면 안 되는 선택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업자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저 또한 빚보증을 서주었고 그렇게 8년간 만났지만 

결국 빚보증, 사업자 등록 등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지 않은 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점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빚 독촉에 시달렸고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을 위해 저는 일해야만 했습니다. 

일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고 저도 제 또래와 같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신청인은 힘든 가정형편으로 월급의 일부를 생활비로 보탰기에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채무로 독촉에 시달리었습니다.

리하여 신청인은 개인회생을 신청하여 빚을 줄여보고자 개인회생을 진행하게 되었고원금의 58%로 인가 결정을 받은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