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 남**
2. 채무액: 34,238,513원
신청인은 1965년 11월 20일 부모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동에서 자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아버지가 중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형님들이 많은 집에서 자라 유독 형들의 군기가 강했고, 특히 셋째 형님에게는 하루가 멀다하고 두들겨 맞아 100원에 면도칼을 사서 산에 가 목숨을 끊으려한 적도 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군에 가기로 결심, 해군에 입대했지만 3일만에 결핵 판정을 받고 귀향조치 당했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열심히 약을 먹고 운동을 하여 다시 육군 고지서를 받았고
육군보다는 특전사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 84년 12월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습니다. 하사로 임관하여 군 생활을 시작해 86년 아시안게임, 87년 국군의날,
88년 올림픽, 89년 천리행군 등 크고 작은 행사도 무사히 견뎌내며 90년 5월 31일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흥은행 청원경찰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90년 7월에 부산본부로 배치 받아 근무하다가 범일동지점, 영주동지점, 국제시장 출장소에서 근무했고
부산에 내려와서 사촌동생에게 소개받아 이혼한 전 배우자인 *** 이라는 처자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임신한지 5개월째 유산이 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91년 11월에 *** 이란 아들을 낳고
94년 6월에는 ***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네 식구가 풍족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며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꿈을 안고 부산 덕포동에 위치한 아파트에 당첨까지 되었는데
IMF가 오는 바람에 건설사가 부도나고 모든 것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퇴직금까지 모두 넣은 아파트였는데 아파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이 되어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화목했던 가정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검은 먹구름만 덮여왔고 다툼이 잦아져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에 당뇨라는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약도 잘 먹고 하여 일상 생활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행을 퇴직하고 택시기사도 근무하게
되었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앉아서 일하며 끼니도 제때 못먹고 하다보니 병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곁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더했지요.
택시기사 5년 동안 사고만 열차례에 몸만 더 약해지고 말았지요.. 결국 택시기사 일을 그만두고 좀 더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공항 셔틀기사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근무 중 소장이라는 사람에게 출퇴근용으로 기아자동차 한 대를 구입해 타고 다녔는데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해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산삼이 당뇨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산삼을 먹고 있었는데 생활고로 대출을 받고 기존 차량 대출금까지 더해지니 생활이 힘들어져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같이 대리 일을 하는 동생들과 식사하는 도중에 왼쪽 눈을 다치게 되었는데 병원에 갈 돈도 없고 이런 일은 왜 나에게만 생기나 하는 울컥한 마음도 들고 해서 가기 싫어져
그냥 방치해두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당뇨가 있는 저에게는 치명적이었는데 몸이 안 좋아지니 급속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순식간에 양발에 당뇨합병증이 왔고
그제서야 급하게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아 무얼하나 하는 생각에 무기력증이 와서 다시 약을 먹지 않으며 그냥 방관하는 삶을 보내오다 동사무소에서
추천해주어 의료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한 치아가 없어 다 뽑고 제 치아 두 개만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나라의 도움으로 틀니를 해서 조금씩 밥을 먹고 약도 먹고 있지만
언제 좋아질는지..
당뇨병은 죽을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는데 너무나 힘이 듭니다. 대출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저 한몸이라도 살기 위해 끝내 파산이라는 것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대출을 내어준 사장님, 산삼 사장님, 통신 사장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