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쇼핑몰 운영 적자로 부산개인회생 인가 성공한 사례

성공사례

자영업자,쇼핑몰 운영 적자로 부산개인회생 인가 성공한 사례

이장헌법무사 0 3,610
관할법원 : 부산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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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 : 박**

2.직업 : 정수기 설치기사, 쇼핑몰 운영

3.월 평균수입 : 3,500,000원

4.총 채무액 : 207,424,780원

5.월 변제금 : 1,243,980원

6.변제횟수 : 36회

7.탕감금액 :162,642,500원

8.변제율 : 46%

저는 부산의 **공업소에서 근무하신 아버지와 경북 **에서 태어나신 어머니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200*년 2월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하였을 당시 IMF라는 것이 찾아왔고 그로인해 아버지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에서 나오시게 되며 괴로움에 늘 술을 드시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머니께서는 가장이 그렇게 되시자 본인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여자의 몸이지만 일용직으로 힘든 일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학교 앞 주유소, 식당을 오가며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1학기 중 입영통지서로 인해 19**년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200*년 4월경, 몸이 편치 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군 생활 도중 돌아가셨고, 이때부터 어머니께서는 홀로 저희 남매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저 또한 학교 졸업 후 취업이 바로 되질 않아 막노동 일을 함께하며 다른 곳을 찾던 중 실내 인테리어 목수 일을 알게 되었고 배우며 생활하다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고 결혼하면서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전세 3천 만원 주택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세 계획을 조금 미루고 미래를 위해 맞벌이를 하였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원청의 요청으로 **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1남 1녀를 낳아 육아를 했으며,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일에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사장과 사원들의 갈등은 점점 깊어가고 사장은 직원을 고용하고 자르고를 반복했고, 남아있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장의 횡포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고 고용보험도 탈 수 없었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그만 두게 되면서 수입이 없다 보니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친구 남편 도움으로 정수기 설치 기사 일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얼마든지 만회 할 수 있다 생각하였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선 개인 사업자를 내고 제품을 싣고 다닐 차량이 필요하였으며 개인공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캐피탈 대출로 중고차를 구입하고 지인에게 돈을 빌려 필요한 공구를 장만하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기사는 4개월간 50만원이라는 보험에 들어야 했고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생활이 되기에 소상공인대출을 받아서 해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 걸 보여주듯 저녁 늦게까지 일을 받아서 죽어라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주변에서 일을 조금 더 주시는 기사분도 계셨지만 어느날 부턴가 사장님의 아들이자 부장에게 이유 없이 찍혀 버린 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늘 감시당하는 것 같았으며 사람들 있는 곳에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동들을 가족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그렇게 3달을 버틴 후 부장에게서 인정도 받고 신임과 신뢰를 얻어 일도 잘 되고 급여도 올라가게 되어 한동안 아내와 기분 좋은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설치 우수기사로 상도 받아가며 지내고 있을 때쯤 빌트인팀에서 일주일간 도와달라는 말에 흔쾌히 도와 줬고 자연스럽게 빌트인 설치팀에 합류하게 되어 급여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지출하는 곳이 (경비 :아르바이트비용. 식대 .카드값.잡자재 구매 등) 많았고 수입이 늘어나니 그만큼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부가세와 종소세의 부담도 커져만 갔습니다.



애들도 점점 커가자 아내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고 애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쇼핑몰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업을 하고 아내도 자영업을 하다 보니 크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용적인 면이나 재고 확보를 위해 금전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지는 사업(인터넷쇼핑몰)에 뛰어 들다 보니 많은 것들이 역부족이었고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달 나가던 금액은 정해져 있고 예상치 못하게 평소에 받던 월급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수입이 들어오면서 어머니에게도 돈을 빌리고 지인에게도 돈을 빌려가며 막을려고 애썼고 급한 대로 자동차도 아직 할부가 남아있었지만 정리해서 몇 백이라도 남은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카드 값이라든지 나가야할 부분들이 있었고, 저에 대한 카드 값도 있고 모든 할부금들이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현금서비스라는 큰 금액이 있어 우선 그것부터 갚고자 아내에 대한 것부터 갚아 나갔고 모든 의식주를 아껴야만 했습니다.


 최소한의 먹을 것(김치, 지인이 준 김.멸치, 라면 등)으로 몇 달 동안 고통 속에서 지출을 줄였으며 안 쓰면서 다달이 나가야 할 카드 값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월급으로 아내의 것부터 해결하고자 27일날 받은 돈으로 밀린 빚을 갚아 상당부분 매달 갚아야 할 것들을 줄여나가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저의 카드 값은 한달, 두달 정도 밀리게 되었고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걸려오는 독촉 전화나 방문에도 피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되풀이 되는 악순환에 이러다가 모든 빚을 갚지 못할까봐 두려웠고 고통스러웠고 끝이 보이지 않았고 무서웠습니다. 여태까지 홀로 자식들을 키우시며 힘든 일당직으로 일하시는 어머니께 도움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자꾸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날 이때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의 돈을 쓰고 발 뻗고 편히 자 본적이 없습니다. 신뢰, 신용을 목숨 같이 생각했으며 빌린 돈은 꼭 갚았습니다. 그들에게도 소중하고 피 같은 돈 임을 압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갚기에는 너무나 버겁기에 개인회생 외에 방법이 없어 부산개인회생전문 이장헌법무사 사무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체계적인 상담과 빠른 진행으로 변제율 46%로 부산개인회생 개시결정이 났으며 이제 일정액을 갚으면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홀가분함이 무엇보다 큽니다.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